안녕하세요:) 그것이 궁금하다입니다. 오늘은 지금은 볼 수 없는 옛날 직업 7가지를 살펴볼 텐데요. "안 계시면 오라이~!" 버스 안내원부터 전화교환원, 한강 얼음 장수, 항공기 기관사까지 다양하게 정리했으니 여러모로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오늘 포스팅의 취지는 단순히 옛날에 이런 직업이 있었다는 걸 알려드리는데 그치지 않고 직업이란 건 언제든지 사라지거나 대체될 수 있으니 항상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걸 알려드리기 위함입니다.
목차
1. 버스 안내원 "안 계시면 오라이~!"
1.1. 시내버스 안내원
1.2. 관광버스 또는 고속버스 안내원
2. 옛날 버스의 추억
2.1. 버스 회수권
2.2. 버스 토큰
3. 버스 안내양이 사라진 이유
4. 영화 간판 화가 '미워도 다시 한번'
4.1. 영화 간판 화가가 사라진 이유
5. 전화교환원 "어디로 연결시켜드릴까요?"
5.1. 옛날 전화기의 추억
5.1.1. 자석식 전화기
5.1.2. 공전식 전화기
5.1.3. 자동 교환기
5.2. 전화교환원이 사라진 이유
6. 인력거꾼
6.1. 인력거꾼이 사라진 이유
7. 보부상
7.1. 보부상이 사라진 이유
8. 승강기 운전원
8.1. 승강기 운전원의 고된 업무
8.2. 승강기 운전원이 사라진 이유
9. 한강 얼음 장수
9.1. 한강 얼음 장수가 사라진 이유
1. 버스 안내원 "안 계시면 오라이~!"
승객이 내리고 버스가 출발하기 전 버스 옆을 탁탁 치면서 "안 계시면 오라이~!"라고 외쳤던 그 사람, 기억나시나요?
버스 안내원은 버스 출입문을 열고 닫는 일부터 버스에 탑승한 승객 요금을 받거나 다음 정차하는 곳을 육성으로 안내하는 직업이었습니다.
요즘에는 버스 안에 설치된 화면이나 음성 안내를 통해 다음 정차지가 어딘지 알 수 있지만 옛날에는 버스 안내양이 "다음 정류장은 광화문입니다. 내리실 분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을 해줘야 알 수 있었어요.
참고로 버스 안내원이라는 명칭보다 버스 안내양, 버스 여차장이라고 불렀으며 남자 차장도 있었지만 흔치 않았다고 합니다.
- 1.1. 시내버스 안내원
시내버스와 고속버스, 관광버스 등 버스 종류에 따라 업무 형태도 조금씩 달랐습니다.
우선 시내버스는 위에서 언급했듯 문을 열고 닫아주거나 정차역을 안내해주는 일을 했습니다. 또한 승객에게 버스 토큰, 버스 회수권을 받아서 요금을 정산하는 역할도 수행했어요.
지금처럼 간편한 시스템이 없던 시절, 안내양이 보조해줬기 때문에 버스 기사들이 운전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고 해요.
- 1.2. 관광버스 또는 고속버스 안내원
관광버스와 고속버스에서 근무하는 버스 안내양의 경우 요즘 스튜어디스처럼 음료수를 나눠주거나 미니스커트 등 세련된 제복을 입고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고속버스 안내양을 두고 '땅 위의 스튜어디스'라고 불렀을 만큼 많은 여성들이 선망하는 직종이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선발 기준이 엄격했는데요. 고졸 이상 학력에 160cm 이상의 신체 조건, 출중한 외모 등이 요구됐다고 합니다.
2. 옛날 버스의 추억
요즘은 교통카드로 쉽게 이용할 수 있지만 옛날 버스를 탈 때는 회수권이나 버스 토큰이 필요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편리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당시에는 나름 경제적이고 획기적인 결제 수단이었다고 합니다.
- 2.1. 버스 회수권
버스 회수권은 버스 토큰과 함께 버스를 이용할 때 꼭 필요한 승차권이었어요.
회수권을 한번 사면 수십 장을 받기도 했는데 당시에는 환승 제도가 없어서 구입표가 많이 필요했다고 해요.
종이로 요금을 내는 시스템이다 보니 각종 위조 행위도 빈번했는데요. 컬러 프린트나 복사기로 복사해 위조 차표를 만들어 무임승차를 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고 합니다. 이후 교통카드가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폐지됐어요.
- 2.2. 버스 토큰
버스 토큰은 서울 기준으로 1977년부터 1999년까지 사용됐던 버스 승차권이었습니다.
버스를 이용할 때 현금을 내거나 회수권을 내는 식으로 승객에게 요금을 받았는데요. 현금의 경우 일부 버스 안내양이 중간에서 가로채는 일이 생기기도 했고, 회수권의 경우 회수권을 위조하는 행위가 빈번했기에 버스 토큰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승차권으로 남아있습니다.
3. 버스 안내양이 사라진 이유
버스 안내양이 사라진 이유는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된 것이 가장 큰 이유예요. 버스 안내양은 1961년 6월 17일 교통부 장관이 여차장 제도를 도입하면서 시작된 이후 1989년까지 존재했습니다.
1981년까지만 해도 없어서는 안 될 직업으로 꼽혔으나, 1982년 시민자율버스 운행제, 정류장 자동 안내방송과 하차벨, 자동문 등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점차 자리를 잃어갔죠.
이후 1989년 12월 30일 자동차 운수사업법 제33조 6항 '대통령령이 정하는 여객자동차 운송사업자는 교통부 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안내원을 승무 하게 하여야 한다'는 법 조문이 삭제되면서 버스 안내양 제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4. 영화 간판 화가 '미워도 다시 한번'
옛날에는 영화관에 붙어있는 대형 간판이 유일한 홍보 수단이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얼굴과 '미워도 다시 한번', '바람 같은 사나이'와 같은 영화 제목이 극장 외관에 걸려있었죠.
지금이야 각종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각종 예능을 통해 영화 홍보를 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홍보 수단이 다양하지 않았어요.
물론 TV나 라디오가 있었지만 영화를 접할 채널 자체가 현저히 부족했어요. 심지어 극장 자체도 많지 않았죠.
이러한 영화 간판을 직접 그리고 만드는 사람이 바로 영화 간판 화가였습니다. 당시에는 인쇄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간판을 직접 손으로 그려야 했기에 영화 간판 화가의 입지가 꽤 탄탄했다고 해요. 간판 하나당 200~300만 원 정도를 받았다고 합니다.
4.1. 영화 간판 화가가 사라진 이유
영화 간판 화가가 사라진 이유는 당연한 얘기지만 더 이상 손으로 그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인쇄 기술의 발달, 디지털 및 자동화 시스템의 진보 등이 있어요.
영화관 수가 점점 늘어나는 만큼 극장 외관에 걸어야 할 간판의 수도 많아지는데, 더 이상 수작업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상황에 직면한 거죠.
그러던 중 2000년대에 들어서며 인터넷이 대중화됐고, 현대 기술이 빠른 속도로 진화하면서 영화 간판 화가가 없어도 극장 간판을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극장이나 기업 입장에서는 굳이 오래 걸리는 영화 간판 화가를 고용할 이유가 없어진 거죠.
5. 전화교환원 "어디로 연결시켜드릴까요?"
전화교환원은 1902년 첫 등장한 이후 자동 교환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직업이었습니다. 전화 교환수라고도 불렸어요.
걸려온 전화를 연결해주는 교환업무 처리를 시작으로 전화번호 안내 및 정보제공, 장거리 전화요금 계산까지 다양한 업무를 도맡아 처리했습니다. 비상시에는 경찰서와 소방서간 연결을 돕기도 했어요.
5.1. 옛날 전화기의 추억
자동 교환기가 등장하기 전에는 전화할 때 상대방에게 바로 연결할 수 없어서 교환기와 교환원을 통해서만 연결이 가능했어요. 요즘 식으로 비교하면 친구에게 전화를 하려면 114를 거쳐야만 전화를 할 수 있던 셈이죠.
- 5.1.1. 자석식 전화기
자석식 전화기는 법적으로 인정된 최초의 전화기로 전자석에 연결된 엷은 철판을 진동시키면 유도전류에 의하여 수화기 끝에서 음성이 재생되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전화기의 핸들을 돌려 발전기를 회전시키면 특정 신호가 교환원에게 전달되고, 교환원이 다른 사람에게 연결해주는 시스템이었어요.
- 5.1.2. 공전식 전화기
공전식 전화기부터는 전력이 항상 공급돼 더 이상 핸들을 돌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전화를 들기만 해도 바로 교환원에게 연결됐어요.
- 5.1.3. 자동 교환기
자동 교환기부터 원하는 사람에게 연결하기 위한 전화번호가 사용되기 시작했고, 전화기 자체에 다이얼이 생겨났습니다.
5.2. 전화교환원이 사라진 이유
전화교환원의 주 업무는 전화를 연결시켜주는 일이었죠. 그러나 전화교환원이 없어도 집에 전화기만 있으면 언제든 원하는 상대에게 통화할 수 있을 정도로 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전화교환원이 자연스레 사라졌습니다.
나아가 삐삐, 공중전화를 거쳐 스마트폰이 등장하며 이제는 집 전화기를 사용하는 집도 찾아보기 힘들어졌죠.
오늘날의 전화교환원은 114 직원분들이 담당하고 계신데요. 스마트폰으로 모든 정보를 검색하고 수집할 수 있게 되면서 114 직원 수 역시도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에요.
6. 인력거꾼
지금의 택시가 있기 전, 우리에겐 인력거가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부르면 달려오는 콜택시처럼 인력거 조합에 전화를 걸면 인력거가 왔고, 부르지 않아도 길거리에 빈 인력거가 많았어요.
인력거는 사람을 태우고, 사람이 직접 끌어서 움직이는 1~2인승 수레를 말하는데 100% 인력으로 작동되다 보니 인력거꾼이 무조건 필요했습니다. 당시에는 교통수단이 다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력거와 인력거꾼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죠.
다만 인력거 요금이 꽤 비싸서 아무나 쉽게 이용할 수 없었다고 해요. 주로 이용하는 사람은 고위 관리나 기생이었다고 합니다.
6.1. 인력거꾼이 사라진 이유
인력거꾼이 사라진 이유는 근대화가 진행되며 각종 교통수단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1910년대부터 전차, 버스, 임대 승용차(택시) 등 다양한 이동수단이 등장하면서 인력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사라진 거죠. 자연스레 인력거꾼도 일자리를 잃게 됐습니다.
1923년만 해도 4,647대였던 인력거는 1931년 2,631대로 줄었고 해방 무렵에는 서울에서 구경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7. 보부상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전국 팔도를 오가며 온갖 물건을 파는 보부상도 사라진 직업 중 하나입니다. 보부상은 보상과 부상이 합쳐진 말로 짐을 싸고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사람을 말하는데요.
보상은 녹용, 금, 은, 면화, 모시, 명주 등 장신구나 귀중품 같이 부피가 작고 비싼 물건을 판매했고 부상은 무쇠, 가마솥, 소금, 생선, 나무 그릇 등 생활용품 같이 부피가 크고 값싼 물건을 팔았습니다.
언뜻 보면 체계 없는 직업처럼 보이지만 엄격한 규율을 갖춘 집단이었다고 해요. 생전 처음 보거나 소속이 다른 보부상일지라도 어려움이 처하면 즉각 도와주는 등 의리로 똘똘 뭉친 집단이 바로 보부상이었어요.
조선 최초의 상인 조합이 보부상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하니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이 되시나요?
7.1. 보부상이 사라진 이유
보부상이 사라진 이유는 교통, 운송 수단이 다양해졌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길도 험난했고 자동차나 기차 등 운송 수단 자체가 없었어요. 그러나 교통수단이 다양해지면서 더 이상 보부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 거죠.
보부상은 한국 전쟁까지만 해도 활발하게 활동했다고 해요. 당시만 해도 자동차와 같은 이동 수단이 현저히 부족했기에 전국의 생필품 공급은 보부상들이 활발하게 공급했던 거죠.
한국 전쟁 때도 국군과 미군에게 탄약과 포탄, 식량, 각종 물자를 지원하는 역할을 자진해서 수행했다고 합니다.
8. 승강기 운전원
승강기 운전원은 백화점, 국회의원 승강기 등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엘리베이터에서 승강기의 조작이나 안내를 도맡아 처리했는데요. 일반적으로 여성이 보조를 하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걸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8.1. 승강기 운전원의 고된 업무
승강기 운전원이라 하면 가만히 서서 버튼만 눌러주는 쉬운 일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신적, 물리적으로 굉장히 고된 일이었다고 해요.
일단 깔끔한 복장을 갖추고 좁은 공간에 반듯하게 서서 올라갔다, 내려갔다만 반복하니 피로가 상당했다고 합니다.
더 큰 어려움은 손님에게 시달리는 정신적 고통이었는데요. 쉽게 말해 일부 남자들에 의한 성희롱이었죠.
엘리베이터에 단둘이 남게 되면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는 일은 다반사였고 심지어 신체를 만지려 하는 사람도 꽤 많았다고 합니다.
8.2. 승강기 운전원이 사라진 이유
1991년을 기점으로 관청 승강기 안내원이나 백화점 승강기 안내원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는데요. 승강기 운전원이 사라진 이유는 기술의 발달이라기보다는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사회 분위기를 타파하려는 의미가 더 크다고 합니다.
9. 한강 얼음 장수
지금은 한강이 얼어붙은 모습을 쉽게 볼 수 없지만 1900년대 초반에서 중반까지만 해도 겨울만되면 한강 전체가 꽁꽁 얼어붙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냉장고도 없었고 한강물도 깨끗했기에 얼어붙은 한강 얼음을 채취하는 얼음 장수가 많았다고 해요.
얼음 장수들은 겨울에 한강 얼음을 채취한 후 산에 묻었다가 여름에 팔았는데 주요 고객층인 생선장수들에게 한강 얼음은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었습니다.
9.1. 한강 얼음 장수가 사라진 이유
한강 얼음 장수가 사라진 이유에는 냉장고 보급, 한강 얼음 채취 금지, 한강 수질 저하 등이 있습니다. 또한 한강이 옛날처럼 꽁꽁 얼지 않는 것도 일정 부분 영향을 줬다고 해요.
한강의 얼음 채취는 한국 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사라졌는데 피난민이 모여 인구가 늘었고 한강물이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만큼 더러워졌기 때문입니다.
이후 동네 시장마다 얼음가게가 등장하고 가정용 냉장고 보급되면서 얼음 장수는 우리 곁에서 모습을 감췄습니다.
오늘 소개한 직업 외에도 수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대체되고, 생겨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곁에 당연하듯 존재하는 직업도 어느 순간 사라질 수 있는 놀라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무인 시스템, 키오스크의 등장으로 대형 마트 캐셔가 줄어든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늘 준비하고 대비해야 할 것 같아요.
여기까지 그것이 궁금하다였습니다:) 모두 부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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